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인간의 행복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성격이다.
성격은 타고난 기질뿐맘 아니라 고통을 수용하는 능력도 포함한다.“
인생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한다. 어느 누구도 고통없이 산다고 할 수 없으리라.
환경이, 주변사람이, 나의마음이, 천성이 나를 종종 힘들게 하는데 이렇게 힘들 때 왜 어떤 사람은 잘 참아내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을 걸까?
주변을 둘러보면 매사에 불만이고 힘들다고 하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나도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고....)
똑같은 상황에서도, 힘든 것을 견디고 참아내 자양분으로 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아마도 그건 ‘주체적인 나’ ‘진정한 나’의 선택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한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이 어릴 때부터 짜여진 교육 안에서 자라기때문에 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해보는 경험하기 쉽지 않다. 애초에 선택지가 많지 않다. 여유 시간이 별로 없는 데 내가 선택한다는 것은 결과값 자체도 사실 크게 벌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선택에 대한 연습이 안되어있기 때문에 상황이 주어주는 대로 혹은 남에게 들은 대로 아니면 다들 그렇게 하니까라는 이유로 선택을 하게된다.
직장을 잡는 것도,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하고 섹스를 하는 것도,
결혼을 하기로 결심하는 것도,
모두 내가 선택해서 결정하기는 하는데 그것이 정말 내가 선택한 것이 맞는지 묻고 또 물어봐야한다.
그저 브랜드가치만을 봤는지, 분위기에 휩쓸렸는지, 시기가 된 것 같으니, 주변에서 다 이렇게 하니까 선택 한 것인지.
결국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것은 나지만, 그것은 진정한 나의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일단 진정한 내가 뭔지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이 ’진정한 나‘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으랴.
’진정한 나‘의 선택을 하지 못 한 사람은 힘들어지면 핑계를 대고 싶어진다. 정확하게 꼬집어 말하면 핑계라고도 할 수 없다. 진정한 내가 선택한 게 아니고 원래 다른요인 때문에 선택한게 맞으니까.
예를 들어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부부가 아이를 낳고 기르기로 결정하는 경우 의견의 합치가 있으면 최상이지만, 한 쪽은 아이를 원하고 다른 쪽은 낳아도 좋고 안 낳아도 좋고 하는 마음인 경우가 있다(정확히는 둘 다 좋다는 것은 말이 좋다는 것이지, 둘 다 상관없다는 의미이다).
둘 다 상관 없다는 것은 시작은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일단 길을 걷기 시작하면 달라 질 수 있다.
양육을 하면서 지치고 힘들어지면 ‘네가 낳자고 했잖아 그런데 왜 너는 더 열심히 안 하는 거야‘ 라면서 상대방을 탓하게 된다.
아이는 일단 낳고 나면 다시 뱃속에 넣을 수도, 버릴 수도 없다. 책임만 남는다고 생각하면 한 없이 무거워져 산후우울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앞서 우리가 틀에박힌 교육, 진로때문에 선택의 폭이 좁다고 말 했지만, 사실은 내가 정말 원해서 하는 선택의 연습이 되어있는 사람은 소소한 선택으로도 큰 결과를 만들 수 있다.
크고 중요한 선택만이 내 인생을 좌우하지 않고,
매일 10분동안 어떤 것을 하느냐의 선택도 내 인생을 흔들 수 있지만, 그게 얼마나 큰 위력을 갖는지는 주체적 선택, 의지를 가지고 자각을 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힘든 것을 내가 선택했다는 것은 내가 내 발등을 찍은 것이 아니다. 내가 이 무게를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나의 밑바닥에 있다는 것임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