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어린 시절 ‘사랑’에는 연인간의 애로스(Eros)사랑, 친구와의 사랑인 스토르게(Storge), 무조건적인 사랑인 아가페(Agape)적 사랑만 있는 줄 알았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서 교육을 통해 자라 자립하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뤄 2세를 키우는 과정을 밟으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이 연인과의 사랑이다. 이 사랑을 책이나 드라마, 영화, 언론매체, 주변사람들을 보고 사랑을 익히다보니 막상 실제로 본인이 남녀간의 사랑을 시작 할 때 맞닥뜨리는 감정을 무조건 사랑이라고 믿어가며 사랑을 하게되는 것 같다.
하지만, 처음의 열정적인 혹은 순수하고 풋풋한 감정만이 사랑의 대표적인 면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 번의 사랑 경험을 쌓아가면서 자신만의 고찰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이 문제를 곰곰히 생각해볼 여력이 많지는 않은 듯하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문제는 ‘사랑을 받는 능력’이 아닌 ‘사랑을 하는 능력’의 문제라고 한다. 곧 대상의 문제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대상이 아닌 내가 마음에 품는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사람은 태어나 곧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와 어머니의 육체와 분리었을 때 그 즉시 어머니 품에서 가슴과 피부를 통해 자신의 고독감을 달래게된다. 그 후 자라고 자라 어머니로부터 독립되어 개성의 감각이 발달하면 이 고독감을 다른 방식으로 극복하고 싶은 욕구가 발달하게 되는데 그것이 곧 사랑의 시발점이다.
그 고독감을 극복하는 것의 발현이 사랑의 모습들인 것이다. 이는 꼭 누군가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누군가가 목적이 되면 오히려 사랑이 독단과 집착으로 되기 쉽다.
사랑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계속할 것을 바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나의 사랑을 그런 방식으로 진행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상대와 일체감을 느끼지만 이는 ‘있는 그대로의 그(또는 그녀)’와 일체가 되는 것이지 나에게 필요한 그와 일치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기술] 중에서

사랑과 결혼
결혼을 함으로써 추구하는 목표는 각자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꼭 올바른 표본이라고는 말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단언컨데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시대에 따라 국가나 인종에 따라 바라는 결혼 생활의 표본이 있다.
먼저는 내가 생각한 결혼 생활의 청사진이 정말 내가 그린 청사진이 맞는지 혹은 주변 사람들이나 부모님들에게 들어오고 교육받아옴으로써 만들어진 청사진인 것은 아닌지 꼭 짚고 넘어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내 마음속에서 바라는 청사진이었다고 해도 배우자와 나는 동일인이 아니기 때문에 청사진에서도 차이나는 부분이 발견 될 수 밖에 없다. 이를 메꿔주는 것이 사랑인데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고 사랑이 결혼에서 어떤 역할인지 모른 채로 결혼한다는 것은 무기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과 같지 않을까한다. 무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어떨까?
사랑할 수 있는 능력
결국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에리히 프롬이 주장하는 것처럼 개인이 의존적이지 않고 온전히 스스로 설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사랑은 누군가에 의해 야기되는 ‘감정’이 아니라 사랑받는 자의 성장과 행복에 대한 능동적 갈망이며, 이 갈망은 자신의 능력에 근원이 있다. ... 내가 자립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집착한다면, 그 또는 그녀는 생명을 구조하는 자일 수는 있지만, 그 관계는 사람의 관계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조건이 된다. -[사랑의 기술]중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갈등이 생겼을 때, 우리는 그 해결을 어떻게든 둘이서 아등바등 부딪쳤다가 떨어졌다가 시간을 가졌다가 또 부딪쳤다가 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부족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우리 커플은 말이 잘 안 통해.“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내가 상대에게 원하는 요구 사항들을 관철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은 서로 말은 계속 하되 해결되지 않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소통의 기술이 부족한 것이 아니고 각자 자신의 사랑의 부족이 아닐까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와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요구해서 될 일이 아니고 오히려 나 스스로는 변화시키되 상대방에 대해서는 기다려주는 배포 큰 모습이 서로에게 있어야한다. 마치 부모라 걸음마를 잘 못하는 아이를 기다려주는 마음이 필요하듯 말이다. - 이것은 원래 어려운 일이다. 나 자신도 생각도 행동도 바뀌기 어려워 안좋은 습관도 말투도 고치기 어려운데 누가 누구에게 요구한다는 말인가. 내가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아주 조금이라도 변화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래서 사랑의 기본 바탕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으므로 나조차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다면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