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책임감의 무게
인생의 즐거움과 관련해서 하나 느낀 게 있다면,
책임이란 게 인생의 즐거움을 깎아내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임감이란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되어있다.
여느 자기 계발 책에서도 선택과 책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나 또한 인생의 어떤 상황 상황에서 또는 변곡점에서 하는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태도는 주체적인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임의 짐이 너무 무거운 상황은 나를 너무 짓눌러 숨 가쁘게, 숨 막히게 만든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책임감과 즐거움의 관계
발레를 전공하여 외국 발레단에서 공연하는 대학생을 해외여행 중에 만났을 때,
그 대학생은 “제가 이걸 업으로 삼지 않았다면 정말 즐겁게 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귀여운 아이들에게 발레를 그냥 가르치는 아르바이트였다면 정말 발레를 즐거운 마음으로 가르칠 수 있을 거예요”
라고 했었다.
이는 그 만큼 즐거움보다 책임감이 더 커져 버려 즐거움을 감소시킨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운동이나, 공부를 지속적으로 해온 사람이 그 분야에 질려서 나중에는 그 분야를 거들떠보기도 싫어하는 경우도 종종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도 내 딸아이를 사랑하는 건 변함 없는 사실이지만,
아이를 키운다는 것, 아이가 내 책임이라는 것은 어느 때는 한 없이 무겁게만 느껴지는 때가 있었다.
그때는 내 한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세상에 치여서 육아가 즐겁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 보통 사람들은 육아가 힘들긴 해도 아이가 예쁜 모습을 보면 너무 보람된다고 하지만- 그저 나에게는 지켜야 하는 나라는 존재가 한 명이 더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산후우울증이나 육아우울증을 진단 받을 정도의 우울하고 힘든 상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부모라는 이름하의 책임은 무겁게 다가온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할까?
책임감이라는 건 사람마다 무게가 다르겠지만, 그것에 즐거움이나 기쁨을 느끼는 게 찰나의 순간뿐이라고 느껴지고 책임의 무게가 나의 삶에서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포기하라는 권고는 아니다.
어떻게 아이를 양육하는 것을 포기하겠는가. 어떻게 시작한 꿈을 갑자기 포기하겠는가.
하지만, 그것을 상쇄시킬만한 다른 것들을 더 큰 목표로 둔다든지, 지금 가지고 있는 마음의 책임감을 조금은 내려놓아 나에게 휴식기를 준다든지 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위해 가장 선행 되어야 할 것은 나의 마음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1. 내가 얼마나 더 갈 수 있고, 얼마나 쉬어야 하는가.
2. 다른 즐거움들을 억누르고 지금 하는 일들만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3. 나를 억누르고 있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가.
내 마음 들여다보기 중에 나를 누르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다.
- 잘 해내야한다는 책임감
- 내가 선택했으니 중도 포기를 할 경우 우스워질 거라는 두려움
- 나만 다르다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시선들
이것들을 넘어서 짐을 벗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기할 것과 지킬 것을 구분
파라노이아(paranoia)-'편집증'이라는 단어가 있다.
파라노이아형의 행동은 정주하는 것이다. 일단 시작하면 그만두지도, 멈추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가는 것,
아사다 아키라의 [도주론]에서는 이와 반대로 '도망치는 사람'을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 일단 시작했으니 끝을 보자 할 때 혼자 도망치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용기'이다.
가볍고 끈기없게 보일지 몰라도 우리 인생은 한 가지의 길만을 위한 선택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내가 선택하고 용기를 내는 것도 필요하다.
요즘 내가 책임지는 것을 포기한 것으로는 ‘요리’가 있다.
요리를 하기위해 메뉴를 고민하는 시간, 재료를 준비하는 시간, 만들고 정리하는 그 시간들은 어떤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될 수 있었겠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도리어 퇴근 후 저녁을 대충 먹음으로 나만의 시간에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기쁨을 주었다.
저녁시간이 많아짐으로써 느끼는 즐거움이 너무나 새삼스러워서 감격스럽지만, 주변 사람들은 나를 한심하게, 혹은 안쓰럽게 바라본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먹는다'는 행위는 에너지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행위이다. 그것을 즐겁게 할 수만 있다면 즐거움에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특히 요즘같이 맛있는 음식, 인기 있는 식당 찾기에 모두들 노력하는 시대에 나의 요리에 대한 포기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즐거움의 가치를 모르는 타인에게 나만의 가치를 이해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즐거움의 기준, 인생의 기준은 나이기 때문에,
나의 삶의 방향키를 쥐고 즐거운 방향으로 틀어가는 것에 힘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