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형 인간= 계획적 인간은 불안형 인간일 확률이 높다
요즘 사람들은 매사에 계획형인지 즉흥적인지 mbti의 J와 P로 구분하여 자신을 판단해 본다. 여행을 갈 때나, 일상을 보내는 스타일에 따라 미리 내가 예상해 보고 그 준비된 마음의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나를 편하게 해주는 것 같으면 계획형, 미리 예상한다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닌데 계획 그 자체가 나를 부담스럽게 한다면 즉흥형이 아닐까 하는데, 즉흥형보다 계획형이 상대적으로 부지런하고 실행력이 높아서 사회에서 원하는 성실한 상이 아니었나 싶다.
나 스스로도 성실한 계획형 인간이다. 마음먹으면 그것을 하는 것이 귀찮다고 생각한 적 없고, 오히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는 미리 시뮬레이션이 머릿속에 쭉 펼쳐진다. 굳이 떠올리려고 하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어떤 말을 하게 될지 그에 대해 이런 반응이면 이렇게 말을 해야지라는 둥, 그냥 상상의 장면이 떠오르는 게 마음의 안정을 준다.
어떨 때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것이 가지에 가지를 뻗어가 사람들이 그만하라고 할 정도인 것도 같고.
그런데 더 깊게 생각해 보면 준비해 놓지 않아서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흘러가면 당황하는 내가 싫은 불안형 인간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안티프래질]에서는 미리 예상해 놓은 길대로 가는 사람은 ‘프래질’한 사람으로, 미래의 유동성에 맞춰 적응력이 빠른 사람을 ‘안티프래질’한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하나의 조직에서도 하나의 커뮤니티에서도 일부는 ‘프래질’한 사람이나 시스템이, 일부는 ‘안티프래질’한 사람이나 시스템이 공존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프래질 한 시스템은 위험에 먼저 직면하며, 더 큰 반향을 안고 실패의 결과도 얻어 안티프래질 한 시스템이 프래질 한 시스템의 시행착오를 보고 이익을 얻는 것이 된다고 하였다.
변화의 스펙트럼이 넓은 시대에서는 안티프래질 한 것이란 이전 데이터에 기대 예상하는 시뮬레이션이 아닌(프래질 한 모습) 직접 경험하는 데이터에 의해 그로 인한 실패까지 나의 경험으로 축적시키는 것만이 생존전략이라고 설명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재촉하고 싶다면 그에게 주치의를 붙여라
앞서 제시한 직접 경험한 데이터에 의한 삶이란, 신체적 나이와는 상관없이 인생의 대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은 나의 주체적인 마음에서 나온 부산물이기 때문에
누군가에 듣고 누군가에 의해 의지한 정보들은 한계가 있다. 물론 우리가 모든 정보를 잘 알 수 없기에, 인터넷의 많은 전문가와 선경험자, 선연구자들에게 정보를 얻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독서도 마찬가지이지 않는가. 남이 한 생각을 읽는 것은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독서를 한다고 해서 생각과 성찰이 깊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안티프래질]의 저자는 의학 부분에서도 이를 지적한다. 우리 시대에는 의학도 교육도 어느 부분 이상에서는 오히려 긍정적이지 못하다고 말하고 있다. ‘의원성 질환’이란 의사가 신체의 안티프래질 한 시스템 이상으로 개입하여 오히려 과잉진료를 하므로 질환이라고 명하는 것이다. 의학이 비약적 발달하므로 생명 연장된 시대가 온 것은 사실이라 크게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요즘은 자기 몸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람 소위 건강염려증에 걸린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재촉하고 싶다면 그에게 주치의를 붙여라’라는 것은 주치의가 내 수명을 갉아먹는다는 뜻으로 나는 한 직장 상사를 통해 그 경험을 했다. 인사이동으로 전혀 새로운 팀에서 새로운 업무를 담당하게 된 나의 상사는 내가 하는 일을 매우 불안하게 여겼다. 나는 솔직하게 나를 왜 그렇게 못 믿어주는지, 그에 대한 것을 말해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그는 심한 불안형, 계획형의 인간임을. 나도 마찬가지로 불안형, 계획형의 인간인지라 그 상사를 너무 미워하지 않으려고 했다. 오히려 거울치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잔소리의 메커니즘
그런데 연말 업무마감을 할 두 달 동안 나의 뇌가 터져버린 듯한 경험을 했다. 두 달 동안 그 상사는 매일매일 업무 체크를 하는 데 너무 소소한 부분까지 하기 시작했다. 마치 부모가 아이가 아침에 씻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 “너 양치는 어디 어디 했어?” “세수는 어떻게 했어?” “씻고 수건으로는 잘 닦았어?”하는 질문을 매일매일 몇 달 동안 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에게 체크하는 매일매일을 겪으면서 나의 마음과 머리가 지쳐가기 시작하자 내 뇌에서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집중력이 떨어지자 귀가 직장 상사의 소리를 귀담아듣지 않고 소리가 잘 안 들리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들리다 안 들리다 하니 실수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정말 놀랐다. 그것은 내 마음이 실수를 했어도 전혀 민감하게 느끼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저 ‘어차피 내 일이 아니고 나는 그냥 몸뚱이만 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느낌, ‘이 상사는 내일도 같은 질문을 할 텐데.... 이게 그렇게 큰 실수인가? 내일도 발견됐을 실수일 뿐인 것 같다 ‘라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나는 내 업무에 대한 주체적 마음이 사라짐이 나를 말라가게하는 뼈저린 경험을 했다.
나 또한 불안형 인간으로 남을 믿어주는 사람은 아니다. 아이에게 “이거 했어?” “저거는 끝냈어?” “언제 할 거야?”라고 말하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왜 이렇게 주체적이지 못하고 내가 말해야만 하지?라는 생각도 자주 하는 잔소리쟁이였다. 하지만 앞서 내가 피잔소리쟁이가 되어보니 끌려가는 인생처럼 숨 막히는 것은 없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별 것 아니다. 직장 생활하면서 인내심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이지 않는가. 나는 일분일초도 끌려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사람이 “일 나가기가 왜 이렇게 싫은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니까 한 스님이 이렇게 말했다. “남이 시키는 것을 하는 것은 무지 힘든 일이야” “내 발로 걸어가야 하는데 지금 앞사람한테 끌려가고 있어. 얼마나 힘들겠어“
라고 하는 것이 생각난다.
내가 끌려가기 싫은 만큼, 내 스스로가 나를 믿는 만큼 상대방을 꼭 믿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숨 막히는 감정을 잊지 않도록 꼭꼭 새겨놓자고 나에게 다짐했다. 인간은 천성과 성향이 있지만, 경험만큼 나를 안티프래질하게 만들 수 있는 게 또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 책에 감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