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지 않으면 힘이 안 난다
사람에겐 여러 가지의 마음이 있다.
잘하고 싶은 마음, 칭찬받고 싶은 마음, 나의 노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 예쁘고 잘생겨 보이고 싶은 마음 등등
그런데 이 마음이 나이가 들고 삶의 연차가 쌓이다 보면 원만해지고 연연해하면서 예민해하지 않는 모습이 될 줄 알았는데.... 조금 아주 조금 둥글게 무뎌졌는지는 몰라도 무뎌지면 삶도 같이 루즈해지고 에너지가 빠지는 그런 느낌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를 외모적으로나 능력적으로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생기게 되면 갑자기 기분도 좋아지고 활력이 생겨서 더 노력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런 마음들은 나를 에너제틱하게도 하지만 모래처럼 부스러지고, 연극배우가 연극이 끝난 뒤 무대처럼 허무해질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연극으로 뛰어들어 열정을 태우며 시간을 보내고 싶어 진다.
왜 그럴까. 대체 왜 꼭 보이지 않고 나 스스로의 발전만으로는 활기와 기쁨을 느끼는 양이 적다고 생각될까
연예인들이 인기만이 그 사람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마치 인기폭탄을 맞고 나서 그 사그라드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 우리 모두 다 알고는 있지만 어쩌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내면의 가치
내가 생각하는 정답은 나의 내면의 성숙함과 발전이 내 생각만큼 잘 안되고 있다거나 그 느린 속도를 기다려주는 게 힘들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느림은 마치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것 같이 더디고 더뎌서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고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게임과 같다.
사실은 그런 곳에서 진리를 찾아야 하고 나를 찾아야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건만. 이 말을 하는 나조차도 자꾸만 샛길로 빠져서 뭔가 주변의 시선과 주변의 인정을 조금은 먹고 싶어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먹고 싶은 인정은 정확히는 내면에 대한 인정이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외모, 재력, 재능, 업무능력같이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인정이다.
우리는 내면의 인정은 남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면의 가치는 정량적으로 측정하여 평가하기도 어려울뿐더러 평가하여 돈과 같은 인생에 필요한 보상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기껏해야 내면의 가치는 매력의 한 부분일 뿐이라던가, 보상 없는 약간의 존경심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면의 가치는 남에게 인정받았을 때 빛을 내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면의 가치는 가지고 있는 사람 본인에게 빛이 되어 에너지를 주는 것이며, 빛을 통해 식물이 에너지를 얻는 것처럼 내면이 빛을 가지고 있으면 나라는 존재가 튼튼하게 자랄 수 있게된다. 나라는 존재가 건강한 식물처럼 자라게 되면, 비바람이 불든지, 벼랑끝에 있는 나무라든지 환경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있게 되고 이는 인생의 동력이 되는 것인데 어떻게 타인의 인정과 비교 할 수 있겠는가. 내 스스로가 자라고 튼튼한 사람이 되는 것을 알아가는 것을 한 번 알게 되면 그게 바로 자존감의 기반이 된다.
사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내재되어있어 죽음에 향해 걸어갈 수록 내 존재가 먼지처럼 사라질 지 모른다는 마음이 저변에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인생에서는 나의 존재가 살아있음을, 공기 가운데로 사라지는 모든 동일한 자연의 일부분이 아닌 나만의 존재감이 있어야 인생이 공허함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내 스스로가 변화하고 좋은 사람으로, 튼튼한 사람으로 자란다는 기쁨을 느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나를 발견하는 기쁨의 날이 짜릿하게 할지라도 양이 너무 적으면 나머지 날들은 그저 허기진 채로 버텨야 하므로 가끔씩 급행열차에 몸을 싣곤 한다. 그조차도 금방 허무해져서 내려오고 싶고 지겨워지기 때문에 자꾸 주변 환경을 바꿔보려고 한다. 나를 찾는 동안 탄 완행열차를 견디는 게 쉽지 않아서 인 것이다.
하반기에도 직장을, 업무를, 지금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업무 색깔도 다른 것으로 바꾸고 싶어서 안달복달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에게
“너는 왜 이렇게 금방 질려하냐 어차피 바꿔도 금방 지겨워할 텐데.”라고 해서
나도 그 이유가 정말 궁금했다.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내려진 결론은 아직 나도 외부의 변화가 그리울 정도로 내 안의 변화들이 만족스럽지는 않은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자기 스스로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이 사교모임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상대방을 혹은 모임을 사랑해서 모이는 것이 아닌 그저 지루함을 같이 모여서 해소하려고 한다고.
온기가 적은 이들은 서로 모여야 겨우 따뜻해지는 것이겠지만,
온기가 충만한 사람은 혼자 있어도 충분하다고,
내 안의 온기를 채우는 오늘 하루가 되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