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하기 위한 첫걸음
쇼펜하우어를 처음 접하게 해 준 책이다.
처음에는 에리히프롬에 푹 빠져서 그에 관련한 책을 몇 권 읽다가 쇼펜하우어의 책을 3권([쇼펜하우어 아포리즘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 소품집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마라]을 읽었는데, 근본적인 부분들 몇 가지가 이어지고 통하는 것 같아 이 또한 즐거웠던 것 같다.
이 책은 흥미를 끄는 제목과 함께 시작한다. 누구나 삶에 지치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때가 종종, 꽤 여러 번, 아니 매일일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반론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원래 이해하고 나면 그 감정의 굴에서 빠져나올 수 있겠다 하는 생각 때문이다.

처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간은 피로를 느낀다' 이 문구 자체를 이해 못 하는 사람은 어리거나 젊은 사람, 혹은 MBTI의 'E'성향으로 많이 치우쳐있는 사람 등이 아닐까? 모르겠다. 하지만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쿡'하고 웃음이 나온다. 너무 공감되는 문장이어서 말이다.
건강한 생활은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통해 개선된다. 육체와 정신 양쪽 모두 건강한 성공적인 생활은 매우 드물다.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간은 피로를 느낀다. 사사로운 움직임마저도 신체엔 부담이다. 이를 견뎌내며 건강하고 활기찬 생활을 오래도록 관리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좋은 습관이 그 대가라고 할 수 있는데, 좋은 습관을 기르는 습관이 있다면 그것은 인내다. 인내는 무조건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기 몸이 견딜 수 있는 범위를 깨닫고 그 범위 안에서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인내다. 몸과 마음이 불쾌해지지 않는 기준을 정리해 오래도록 지키는 것이 핵심이다. 스스로 정한 범위 내에서 자신의 상태와 성격이 조화된 최적의 규칙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중에서
인간의 생이 육체와 정신의 운영에 달려있다면, 둘 다 운영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둘 중 어느 것이라도 얕보면 안 된다. 내 몸이 어느 정도를 견딜 수 있는지 알아야 무리하지 않고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고, 더불어 내 정신이 어느 정도의 어려움과 불편함을 견딜 수 있는지 아는 것도 필수적이다.
나는 치킨 한 마리를 시켜서 먹으면 그중에 얼마큼 먹어야 내 속이 편한 지도 체크한다.(체질적으로 위장이 안 좋은 나는 강박적으로 그런 습관이 생겼다. 내가 체크한 그 몇 조각을 초과하게 되면 배탈이 나서 며칠을 고생하다 보니 저절로 나의 식습관의 범위를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은 비단 육체적인 건강에 대한 것뿐만 아니다. 내가 불편해하는 사람들의 유형이 무엇인지, 그 불편한 사람들과 있을 때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견딜 수 있는 지도 생각해 보고 경험해 보는 것도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혹 자는 그건 너무 강박적이고 그렇게까지 하면서 사는 것은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의 삶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원래 특정 몇 가지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사람은 그 음식들을 당연히 주의해야 하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걸 유별나기 때문에 까다롭다고 생각하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잠을 잘 못 이루는 사람은 성공적인 잠자기 루틴(시간이나 행동 등)을 잘 지켜야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먼저 내가 내 육체와 정신을 잘 운영하는 데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눈치를 보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내주어야 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그 감수하는 부분조차 나의 손아귀 안에서 조절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는 '나'로서 존재해야만 즐거울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이 도달할 수 있는 장점은 판단이다
판단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사색을 통해 이르는 선택과 결정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군주와 같다. 그는 타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성을 지켜내고, 독립된 자유를 누리고, 그에게 명령하는 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의 삶은 스스로 판단한다. 그에게 용기와 자신감, 지혜를 주는 원천은 바로 자신이다. 그에게는 세상을 이해하고 조립하는 명확한 근거가 있다. 바로 자신이다.... 중략
고통과 권태에 대한 두려움은 믿음이 약해졌다는 신호다. 인생이 두려운 까닭은 나의 의지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고, 사람이 두려운 까닭은 그의 의지가 나를 지배하게 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중에서
내가 삶을 살아가는데 스스로 판단에 의해 길을 가지 않으면, 그건 내 의지로 가는 것이 아니므로 '내가 아닌 것 같다'라고 생각이 들거나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공허함들이 스며들게 되면, 위에서 말한 자신의 성을 지켜낼 자신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부의 추월차선]에서는 그 판단이 내가 내린 판단이 맞는지 잘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것이 바로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의 다른 점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결정을 자신이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는 다른 불순물이 들어있을 확률이 높다.
이게 에리히프롬이 말하는 소유냐 존재냐의 나의 존재이다.
결국 결론은 나의 존재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두 사람의 생각이 나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고 매일매일의 삶의 목표가 생기게 하는 느낌이다.